원래 이 칼럼을 생각했을 때 제목은 「진히로인은 정히로인을 이길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였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작품들도 변해가고 진히로인이 승리한 작품도 나왔기 때문에 제목을 고치고 칼럼의 내용도 고쳤습니다.

먼저 진히로인이란 무엇인가?


라노베나 만화 혹은 미소녀 게임에 등장하는 히로인들 중에 언제부터인가 진히로인이라고 불리는 존재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자세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진히로인이라는 단어가 쓰이기 시작 한 것은 몇 년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진히로인이라는 개념의 캐릭터들은 존재했습니다.

진히로인이란 작품 내에서 서브 히로인 중 인기가 정히로인보다 높은 캐릭터에게 주어지는 호칭입니다. 뜻은 ‘진짜 히로인’.

즉 작가나 제작자가 정면으로 밀어주는 히로인은 페이크, 즉 거짓이고 진히로인이야말로 그 작품의 진짜 히로인이라고 주장하는 뜻의 단어입니다. 



왜 진히로인이라는 존재가 나타났나?
 

작품 내에서 남자 주인공과 반드시 이어질 거라는 분위기를 팍팍 내뿜는 히로인. 하지만 서브 히로인들은 히로인의 라이벌로 혹은 그냥 친구들로 묘사됩니다. 서브 히로인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로 정히로인을 이길 수 없는 작품들이 많습니다.
 

『전영소녀』에서 아이의 아성은 절대적이었고, 『3X3 아이즈』에서 야크모는 항상 파이만 찾았으며 『고스트 스위퍼』에서 호동의 정식 연인이 됐던 루시올라도 루나의 전생의 운명이라는 힘에 굴복했으며 『러브히나』에서는 은근슬쩍 케이타에게 반한 수많은 여성 캐릭터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나루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또한 『에반게리온』에서 레이가 살짝 웃고 아스카가 츤츤거려도 결국 신지의 정신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카오루였죠.

이처럼 서브 히로인들이 아무리 자신의 매력을 어필해도 정히로인을 절대 이길 수 없었습니다. 그럼 진히로인이라는 존재는 어째서 나타난 걸까요?


처음에는 단순 동정표였을지도.



십여년 전의 만화에서는 남자 주인공과 이어질 여자 주인공은 초반부터 정해져 있었습니다. 독자들은 은연중에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 둘이 어떻게 이어질까를 기대하며 감상했습니다. 그리고 작품 내 캐릭터의 남녀 성비율을 보면 남성이 좀 더 많은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남자 주인공과 잘 되지 않아도 끝에 가서 주인공의 주변 남자와 이어지는 서브 히로인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마저도 없는 히로인들에게는 동정을 보낸 독자도 많았을 겁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손에 꼽을 정도였던 연애 관련 만화는 점점 늘어갔고 러브 코미디라는 가볍고 유쾌한 장르가 점차 증가했습니다. 이런 종류의 작품들이 늘어나면서 작품내의 성비율은 여성 캐릭터가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그것은 서브 히로인들이 매력을 어필할 수 있는 기회가 됐습니다.




작가 입장에서 부담이 없는 서브 히로인의 이야기.


러브 코미디에서 아무리 남자 주인공이 주변 여자들에게 휘둘려도 결국 엔딩은 정히로인이라는 결과를 쥐고 있는 작가에게, 서브 히로인은 정히로인으로는 할 수 없는 것들을 이것저것 실험해볼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 때문인지 절대로 정히로인이 될 수 없는 속성으로 무장한 서브 히로인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작가의 투철한 실험 정신으로 만들어진 ‘어 이야기 괜찮은데.’라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시나리오에 정히로인보다 개성이 강하지만, 그래도 정히로인을 이길 수 없다는 동정표까지 쏟아져 서브 히로인들은 정히로인의 인기를 조금씩 위협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적일 것 같은 정히로인에게는 커다란 약점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러브 코미디에서 정히로인과 남자 주인공이 연인이 되는 것은 곧 엔딩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히로인과의 연애는 쉽게 진도를 나갈 수가 없습니다. 그에 비해, 서브 히로인들은 거칠게 없습니다. 어차피 계란으로 바위치기니, 마음껏 부딪치고 깨지자 라는 느낌이랄까요.



그렇게 서브 히로인 중 인기가 높은 캐릭터들은 진히로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인기 순위 투표에서 정히로인을 눌러버리는 결과마저 야기하게 됩니다.



진히로인은 정히로인을 이길 수 있는가?



이제 제목에 쓴 질문에 대한 생각을 해볼 차례입니다.

앞서도 말했듯이 아무리 인기투표로 눌러도 정히로인은 주인공과 맺어질 운명으로 만들어진 캐릭터입니다. 히나기쿠가 아무리 인기투표 1위라고 해도, 아땅이 가슴 아픈 이별 이야기로 어필해도 『하야테처럼』의 정히로인은 나기입니다. 고이 키워서 접수하겠다는 야망이 귀여운 유노 선배와 쿨하지만 누구보다도 주인공을 걱정하는 긴코가 ‘그래도 로리랑 이어지는 건 아니지!’라는 독자들의 지원사격을 받아도 『쿠레나이』의 정히로인은 무라사키죠.



인기로 눌러버려도 변하지 않는 운명.

정녕 뒤집을 수는 없는 걸까요?


제 대답은 '아니다'입니다. 분명히 예전에는 정히로인과 주인공이 맺어지는 운명은 불멸의 법칙이었으나 요즘 들어와서 조금씩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딸기100%』입니다.

그리고 경우는 다르지만 『스쿨럼블』은 야쿠모와 에리라는 걸출한 진히로인을 탄생키시고도 막판에 정히로인을 어떻게든 밀어주려다가 이야기가 심하게 꼬이는 바람에 “뭐냐?!”라는 불만이 터져 나오는 엔딩이 만들어졌죠.

차라리 러브 코미디의 왕도 엔딩 중 하나인 「아무도 선택하지 않고 그 일상은 늘 지속된다」 식으로 마무리 지었다면 심하게 욕을 먹지는 않았을텐데, 단행본을 꼬박꼬박 모은 독자의 입장으로서 참 아쉬운 만화입니다.

이제는 진히로인이 얼마든지 정히로인을 이길 수 있는 시대입니다.다만 작가는 크나큰 리스크를 져야 됩니다. 아무리 인기투표로 정히로인을 압도한다고 해도 스토리의 큰 줄기의 중심에 있는 정히로인을 탈락시키려면 납득이 가는 전개를 펼쳐줘야 됩니다.

이도저도 안될 것 같으면 「차라리 욕은 좀 먹을지언정 해프닝은 계속된다」 식으로 엔딩을 마무리 짓고 결과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무엇을 선택하든지 진히로인이 걸출한 작품은 ‘어차피 마지막에는 정히로인과 연결될 게 뻔해.’라는 전개를 뒤집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카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리스크는 크지만 독자에게 “과연 누구랑 이어질까?” 라는 두근거리는 재미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고민은 깊어만 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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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운   http://giknc.egloos.com/
강명운 작가님의 작품들 : <드래곤 남매> , <사립 사프란 마법 여학교였던 학교> , <꼬리를 찾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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